으앙 키보드야 아프지 마
최근 즐겨 쓰던 키보드는 키크론의 B1 Pro다. 펜타그래프 타입의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로 거의 노트북 키보드와 비슷한 키감이라 조용한 편이었는데 가족들이 자는 밤에 키보드를 두드려야 되는 경우가 많은 데다 키 눌리는 깊이가 깊지 않은 걸 선호해서 고른 키보드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어딘가 아픈 듯했다. 뭔가 기우뚱하다고 해야 하나? 어떤 키를 누를 때마다 키보드 전체가 살짝씩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에는 키보드 아래에 받침대로 붙여 놓은 종이 뭉치가 좀 떨어졌나 싶었다.
그래도 한동안은 별생각 없이 이 키보드를 그대로 썼었다. 키보드로써 기능엔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키보드의 전면을 볼 기회가 생겼는데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이런. 전면 오른편에 왜인지 키보드 케이스가 벌어져있다. 왜 벌어져 있을까? 애들이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려서 좀 부서졌나?
'뭐 벌어졌으면 다시 닫으면 되겠지?' 라며 아주 편한 생각으로 벌어진 부분을 닫기 위해 꾸욱 눌러봤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거의 닫히질 않았다. 무언가의 탄성이 느껴지면서 전혀 닫히지 않았다. 왜인지 힘을 더 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한 느낌도 들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건 복수가 찬... 것과 비슷하게 배터리가 부풀어 오른 상태가 분명했다.
갑자기 공포에 휩싸였다. 배터리가 부풀어 올랐다면 갑자기 터지거나 불이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키보드는 계속 두드려야 하는 장비인데 이러면 배터리에 충격이 지속적으로 갈 수 있다. 이 정도면 조심해야 하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마침 이 키보드 배터리가 다 되어간다. 이제 충전을 해야 하는데 '충전기를 꽂아 뒀다가 불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쉽사리 손이 가질 않았다. 배터리가 부푼 상태에서 충전을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니 말이다.
찾아보니 키크론의 키보드 보증기간은 1년으로 이미 한참 지난 상태였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예전에 B1 Pro를 사면서 잠깐 창고에 처박혔던 키크론 K8K3를 오랜만에 끄집어냈다. 나름 저소음의 기계식 키보드지만 그럼에도 시끄러워서 아이가 생긴 후 어쩔 수 없이 안 쓰던 녀석이다. 하지만 새로 조용한 키보드를 사는 것도 좀 무리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아이들도 같이 사는 집에 폭탄 같은 걸 놔두는 것보단 나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이제 B1 Pro는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놔뒀다 폐기처리해야 할 것 같다. 2년 좀 넘게 쓰며 나름 정이 들고 손에도 잘 익은 것 같은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오랜만에 K8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어머 이거 뭐야... 와...
확실히 기계식이 타건감이 끝내준다. 아주 흥겹게 글을 쓸 수 있다. 뭐야 이거 너무 좋잖아? 아아...
결론: K8 짱조아
근데 한밤중에 애들 재우고 타이핑하려니 좀 신경이 많이 쓰이긴 쓰인다. 리듬감을 포기하고 천천히 살살 치니 타이핑 맛도 너무 없고 난감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