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녀 부모 일기: 팬데믹이 별거 있나

건강, 육아 // 2025년 12월 04일 작성 // 2025년 12월 05일 업데이트

아이를 둘 이상 키운다는 건 하나일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큰 행복과 함께 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다만 행복이 커지는 것보다 고통이 커지는 게 기하급수 같다는 점이 문제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그 예로 삼을 만한 전염병 에피소드를 간단히 정리해 볼까 한다.

악몽의 방문 (Judas / Pixabay) 악몽의 방문 (Judas / Pixabay)

참고로 이 글은 하찮은(?)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일부 내용을 각색했다. 하지만 발병 증상과 횟수 그리고 기간은 팩트로만 정리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어느날 작은 아이가 어떤 바이러스에 걸렸는지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콧물도 꽤나 흘리고 기침도 제법 했지만 그래도 고열이 나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안 했다.

하지만 고열이든 미열이든 열이 나면 생기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열이 나는 것은 감염이 시작되었다는 뜻이고 전염성도 높아지는 시기니 말이다. 따라서 아이는 가정보육을 해야 하며 부모 중 누군가는 연차를 내고 아이를 집에서 봐야만 한다. 그리고 아이가 어리다면 당연히 쉴 시간도 없이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봐야 한다.

그래도 이 때는 겨우 하루 이틀 연차 낸다고 뭐가 바뀔까 하며 참 가볍게 생각했었다. 어쨌든 이 일로 연차 2일치가 소모되었다.

도망쳐! (James de Castro James / Pixabay) 도망쳐! (James de Castro James / Pixabay)

우연일까 필연일까

약 이틀이 지나고 작은 아이의 상태는 꽤 호전되었다. 열은 거의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기에 이제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드디어 해방이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깐의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평화의 마감 시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각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큰 아이가 열이 나요"

아 이런.... 직감적으로 뭔가 큰 일의 서막을 알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물론 당장은 그저 기우였길 바랄 뿐이었지만 말이다.

애초부터 큰 아이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달고 살아서 콧물을 아침 밤으로 늘 흘렸다. 그래서 코감기 같은 것에 걸리면 눈치 채는 게 좀 늦어지는 편이었다. 이번이 그랬다.

다만 큰 아이의 증상은 이번에는 코감기를 넘어서 기침감기로 이어지는 듯했다. 이 병이 가족에게서 옮은 건지 어린이집에서 옮은 건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고열은 아니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하지만 이제 또 그 문제가 나온다. 미열이든 고열이든 열이 나면 생기는 문제 말이다. 큰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가정보육을 해야 했고 또 누군가는 연차를 내야만 했다.

아이가 열이 나면 기본적으로 이틀 연차는 각오하는 편이다. 대체로 이틀에 걸쳐 열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부모 합산 4일의 연차 소모가 예정되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연차는 합산 4일 소모되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jacqueline macou / Pixabay) 우연일까 필연일까 (jacqueline macou / Pixabay)

전환의 시작

예정(?)대로 약 이틀 후 큰 아이의 상태도 제법 좋아졌다. 이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날은 참 평화롭다. 제대로 쉴 수 있는 몇 안되는 짧은 시간이다. 불행히도 일을 하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런데 예전의 그 '서막'을 잊었던 게 문제다.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 평화로웠던 하루의 다음 날, 작은 아이가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콧물과 기침도 다시 시작되었다.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어서 혹시나 독감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그리고 같이 들던 의심은 큰 아이에게서 옮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고열이 나면 가정보육을 위한 연차 소모도 문제지만 한가지 더 문제가 생긴다. 밤에 아이 열보초를 서야 한다는 점이다. 언제 어떻게 열이 갑자기 오를 지도 모르니 지속적으로 열을 체크하다 열이 오름세이고 많이 높아지면 자던 아이를 깨워서라도 해열제를 먹여야 한다. 당연하게도 아주 피곤한 일이다.

열이 나는데 왜 해열제를 바로 안 먹일까? 그야 열이 나는 이유는 우리 몸이 침입자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굳이 열을 바로 잡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정(?)된 대로 그날 밤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연차를 내고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하루종일 봐온 상태에서 말이다. 그리고 연차 소모는 합산 6일이 되었다.

드디어 폭격이 시작되었다 (dlsd cgl / Pixabay) 드디어 폭격이 시작되었다 (dlsd cgl / Pixabay)

이 정도면 팬데믹 선포도 가능할 지도?

작은 아이가 고열이 난 다음 날, 엄마가 갑자기 목이 아파졌다고 한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마스크를 쓰고 자는 모습을 보니 착각 같은 건 아닐 거다. 심상치 않은 일이다. 정말 집 안에서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엄마의 증상은 크게 나빠지진 않았다. 그리고 작은 아이의 상태도 꽤나 호전되었다. 이제 작은 아이도 고열이든 미열이든 이틀이면 왠만한 열은 잡히는 모양이다. 계속 아픈 것은 그저 연차가 극도로 소모되고 있는 부모의 연차 사정일 뿐이다.

그래도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랜만의 수 일간의 평화를 맛 보는 것으로 많은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을 떨쳐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니 말이다.

불행히도 그 주의 토요일이 되어서 평화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한다. 큰 아이가 갑자기 목이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아이는 콧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결국 병원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약간 시간이 지난 터라 덜 붐비는 소아과를 찾아갔는데... 그 병원도 시장 난리통이 되어 있었다.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인지 잘 모르겠지만 병원에서는 큰 아이의 목에 별 이상이 없다고 진단 받았다. 작은 아이는 늘 그랬듯이 코감기로 진단 받았다. 이 정도면 다행으로 끝날 일이다.

하지만 금이 가기 시작한 평화는 그 다음날 일요일에 완전히 깨져버렸다. 큰 아이가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귀가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고열에 통증에 아주 난리였다. 열보초는 물론이고 아이가 깨어있을 때의 투정도 받아줘야 할 처지다. 다행히도 일요일에 문을 연 병원을 멀리서라도 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그리고 독감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가 열이 나면 또 열보초를 서야 한다. 벌써 2주 째 제대로 잠을 잔 날이 그렇지 못 한 날보다 확연히 적었다. 그리고 너무 피곤했는지 아빠도 갑자기 목이 아파왔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렇게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두 아이의 상태는 그래도 급격하게 좋아졌다. 그래도 또 연차를 하나 소비했다. 아직 연차 초과 소모로 급여가 깎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픈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그 주의 남은 날들은 평화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까지 연차 소모는 합산 7일로 늘어났다.

그런데 그 다음주 갑자기 작은 아이가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끝이 없다. 완전히 다 나은 것 같았던 일주일 만에 갑자기 고열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당장 병원에 방문해서 폐렴이 아닌지 검사를 받았다. 어차피 고열이라 가정보육도 해야 한 데다 요즘 소아과는 불시 방문 때 최소 2시간 대기는 각오해야 하기에 당연히 연차를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폐렴은 아니고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로 인한 감기로 추정되었다. 어쨌든 이 고열은 하루만에 잡히긴 했으니 다행이긴 하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또 연차가 소모되어 합산 8일로 늘어났다.

또 열보초를 서야 했고 피곤했지만 작은 아이가 괜찮아진 후 그 주의 남은 날들은 그래도 평화가 이어졌다.

이제 끝일까? 그럴리가.

그 다음 주, 이번에는 큰 아이가 갑자기 또 열이 났다. 제법 고열로 말이다. 그 날 또 열보초를 서야 했다. 다행히도 하루만에 열은 어느 정도는 잡히긴 했지만 또 중이염이 생긴 모양이다. 어쨌든 또 이틀 간의 가정보육과 연차소모가 있었다. 합산 연차 소모 10일....

그리고 아이가 고열이 난 그 다음날 이제 아빠가 목이 아프다고 한다. 뭔가 또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 내용을 끝으로 이 글의 초본 편집이 끝나려나 하는 순간 작은 아이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뒤 결국 작은 아이가 미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날 밤 고열로 심해졌다. 물론 다음 날까지 열은 이어졌고 말이다. 아... 정말이지 끝이 없다. 어쨌든 합산 연차 소모 12일....

도대체 가족 내에서 몇 번의 전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이 정도면 팬데믹 선언 해도 될 정도 아닐까?

이 정도는 했어야 했을까 (Mario Hagen / Pixabay) 이 정도는 했어야 했을까 (Mario Hagen / Pixabay)

그 이후

아직 이 연쇄가 끝이 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마무리는 지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쓰기 시작해서 너무 오래 묵히고 있어서다.

그리하여 대략 한 달 간 엄청 많은 일이 있었다. 아이들과는 다르게 다행히도 엄마와 아빠의 증상은 심해지진 않았다.

아이들이 한창 병치레를 하는 그 전부터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마스크 착용 캠페인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워낙 독감이 유행하기도 했으니 괜찮은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단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이들이 한창 병치레 중일 때 이 캠페인이 끝났다는 점이다. 아마도 독감 환자가 더이상 안 나오니 그랬던 것 같고 그 말은 우리 아이들이 걸렸던 것 중에서 독감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으로 이어지기는 했다.

과연 우리집 역병(?)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나였을까 여럿이었을까? 흔한 감기 바이러스 였을까 코로나 였을까 RSV 였을까 RS 였을까 아니면 흔한 독감이었거나 혹은 신종 독감 이었을까? 뭐 이제 와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는 하다.

그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연차가... (Dorothe Wouters / Pixabay) 그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연차가... (Dorothe Wouters / Pixabay)

그리고 얻은 것

이 한 달 간, 우리는 엄청난 것을 얻었다. 부모 합산 2주 이상의 아이 가정 보육을 위한 연차 사용과 짧은 기간에 비해 과하게 나온 병원비와 약값, 그리고 특히 독감 코로나 검사 비용이 짜증날 정도로 많이 나왔다. 아이 둘이 돌아가면서 해도 이런데 셋 이상이면 어떨지 상상도 안 된다.

이쯤 되면 다자녀 양육의 난이도가 왜 높아지는지 한 가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전염병이 도는 시기에 다자녀 가정의 아이는 물론 부모도 여러 면에서 고통의 역병 또한 같이 돈다.

부디 국가는 자녀 양육을 도와줄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서 부모들에게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 육체적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인 이 스트레스들을 해소할 방법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필요한 것은 다르겠지만... (MichaelWuensch / Pixabay) 사람마다 필요한 것은 다르겠지만... (MichaelWuensch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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